연이에게
또 한주가 지났네. 아빠는 주말에 회사 행사로 제주도 갔다 왔다.
항상 느끼는 게 좋은 곳에 가고,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가족들과 함께 하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지.
안타깝게도 이번 행사에서는 그런 곳을 보지 못한 거 같아.
아니 가족들 없이 아빠 혼자여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.
아빠도 연이처럼 재수를 했지만, 아빠는 고3 때는 수능이 아닌 학력고사였다.
학력고사는 시험 성적과 내신 등급으로 모든 걸 결정했었지.
그 시험 성적으로 전기, 후기는 따로 시험을 또 보고, 그리고 전문대는 전기 때 성적으로,
그렇게 3번 지원을 해서 대학을 가던 시기였다.
전기에 시험을 떨어지고 나니, 후기에는 가고 싶은 대학이나 과가 거의 없었던 거 같아.
후기 시험을 보긴 했지만 원하는 대학과 학과가 아니라서 시험 볼 때 집중을 하지 않았고, 그리고 전문대...
아빠 성적으로 서울에서 그 당시에 취업률이 가장 높은 전문대와 학과를 갈 수 있었던 거 같아.
그런데 입학원서를 넣고 나서, 당시에는 온라인이 없고 학교에 직접 가서 원서를 접수하는 시스템이었거든.
그 학교 지원하는 애들을 오가다가 많이 봤는데...
내신이나 학력고사 성적이 많이 낮은 친구들이 지원을 하더라고. 물론 경제적인 이유와 다른 이유 때문에 지원하는 친구들도 있었겠지.
그 친구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,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,
당시에 아빠 생각은 내가 만날 동급생과 선배들이 내가 가고 싶던 학교와는 차원이 다른,
뭐랄까 내가 한 단계 내려앉은 느낌이 들더라고.
사람에는 등급이 없다고는 하지만,
그 전문대에서 그 친구들과 학교를 다닌다는 게 자존감에 많은 상처가 될 거 같더라고.
그래서 나중에 전문대 합격을 했지만, 결국 가지 않고 재수를 하게 된 거지.
아빠가 송곳이라는 웹툰을 본 적이 있는데, 그 내용에 그런 말이 있더라고.
"서 있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바뀐다"라고.
네가 어떤 학교를 가느냐에 따라 네 주변의 사람들, 친구들이 바뀌고, 선배들도 바뀌고
그리고 네가 나중에 살면서 갈 수 있는 인생의 길들도 여러 갈래로 바뀌는 거라고.
사람에는 등급이 없지만, 네가 알고 있듯이 학교에는 등급이란 게 있는 게 현실이고,
그 학교에 따라 인생을 갈 수 있는 선택의 길이 바뀌는 거 같다.
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고, 대학교를 가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많다.
아빠도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했지만, 삶을 살아가고 경제적인 부분에 아무 문제 없이 잘 해오고 있으니까.
그렇지만, 네가 조금 더 노력해서 너와 너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얘기인 거 같아.
너보다 뛰어난 친구들과 선배들을 보면서 너도 그렇게 너 자신에게 그 길로 갈 수 있는,
그 주변 환경이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거야.
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선한 영향력이 그 전문대 보다는 훨씬 더 많이 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.
그리고 가장 중요한건, 네 자존감과 너의 성취감인 거야.
살면서 그 부분은 너의 인생에 정말 많은 영향을 미치고, 성공의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은 나이가 들어도 소중한 인생의 자산이 될 테니까.
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, 컨디션 관리 잘하고, 조금만 더 참고 노력하자.
힘내고, 아빠가 정말 정말 사랑하고 응원한다.
아빠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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